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배경[1921~1923년]
20세기 최초의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은 독일의 예전 이름인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발생 원인은 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1차 세계 대전 중 바이마르 공화국은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차입금으로 전쟁 자금을 조달하게 됩니다. 승리를 전제로 패전국에게 전쟁 배상금을 요구할 계획이었습니다. 마르크화의 평가 절하와 전쟁 중에 발생한 급속한 화폐 발행은 전 후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제공하기에 충분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의 패배와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1918년 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전쟁 중의 배급제로 화폐 발행 대비 사용되지 않았던 시중의 자금과 배급제가 끝나면서 상품의 수요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는 시기였습니다.
결정적으로 독일은 전쟁의 패배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거울 방에서 1919년 6월 28일 11시 11분에 서명한 베르사유 조약(영어: Treaty of Versailles)에 서명하게 됩니다. 1,320억 마르크(330억 달러)는 독일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나중에 1,120억 마르크(263억 달러)로 수정되지만 베르사유 조약에 의한 마르크화의 가치 하락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견해는 전쟁 후 상품의 수요로 인한 것 보다 매우 높은 전쟁 배상금이 주된 원인으로 보는 경제 학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과도한 전쟁 배상금을 부과한 이유는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가혹한 조치였습니다.
1921년부터 매년 20억 마르크씩 66년 동안 연합국에 지불하기로 한 전쟁 배상금에 대해 금과 외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마르크화의 평가 절하는 불가피했습니다.
진행 상황
1921년 달러 당 90마르크로 마크크화는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가졌지만 1921년 6월 첫 번째 배상금 35억 금화 마르크 지불이 진행된 후 달러 당 330마르크로 가치가 하락하게 됩니다. 1922년 12월 달러 당 7400 마르크까지 가치가 하락하게 됩니다. 계란 한 개의 가격이 0.008마크르에서 800억 마르크로 오르고 1조 마르크 동전까지 발행할 정도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독일 경제는 마비됩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배상금을 지불 받지 못한 1923년 1월 프랑스군과 벨기에 군은 독일의 주요 산업 지역 ‘루르‘를 점령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또한 수입 물가 상승으로 식·음료 가격의 상승으로 1년 동안 물가는 5배 오르게 되며 1923년에는 1914년 대비 7천억 배로 물가가 상승한 상태였습니다.
화폐 개혁
독일 정부는 1조 마르크를 새로운 1 렌텐마르크로 바꾸는 화폐 개혁을 단행합니다. 단 한 번의 개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리 금과 연동해서 발행하여 화폐 가치에 대한 신뢰가 다시 형성되었으며 이후 연합국과의 배상금 조정과 금융 지원으로 독일 경제는 빠르게 회복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전 재산을 잃은 독일 국민들이 결국 한 명의 독재자에 의한 전체주의 국가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며, 2차 세계 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는 지배적인 견해를 갖게 됩니다.
해당 콘텐츠는 투자 판단에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실 수 있으며, 모든 투자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책임으로서 그 결과에 대해 법적인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