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0년 남해회사 버블(South Sea Bubble)
남해회사 버블(South Sea Bubble)은 1720년 영국에서 일어난 금융 버블입니다. 남해 회사의 주식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게 되었지만, 가격이 급락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사건입니다.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는 아프리카 노예를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로 수송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주 목적으로 1711년 영국에서 설립된 회사였습니다.
1. 남해회사 배경과 개요
1713년, 영국은 프랑스와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끝마치고 러시아와의 대북방 전쟁으로 국가 재정 부담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 채무 조사 결과, 정부가 900만 파운드의 채무를 지고 있고 이를 갚을 소득이 특별히 할당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영국의 재정 중 채무 상환 이자와 군사비가 9% 이상을 차지하였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 합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회사는 당시 영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전액 수급하고, 대신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이자와 원금 상환을 보장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막대한 국채 발행으로 인한 빈곤과 불안을 겪고 있었는데, 1711년 이에 대한 대책으로 국채 수급과 관리를 전담하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 남해회사입니다. 이름에 남해가 붙은 이유는 당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 탐험과 식민화 당시, “남해”라는 용어를 남미와 주변 해역에만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남해 회사는 국가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부실 상태에 있던 많은 채권과 증권의 일부를 강제로 남해회사 주식으로 전환시켜 국고 지원과 남해 무역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이자 지불 등을 통해 채무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1713년 영국 정부는 남해 회사에게 연간 4,800명의 노예를 스페인 식민지에 공급할 수 있는 30년 동안 지속되는 Asiento de Negros 를 부여했습니다. 남해회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 카라카스 , 카르타헤나 , 하바나 , 파나마 , 포토벨로 , 베라크루즈 에 사무실을 열어 대서양 노예 무역을 주선하도록 허가를 받게 됩니다.
2. 금융으로 확장
남해 무역은 스페인과 협상하여 아시엔토 무역권을 획득한 뒤, 아프리카-스페인 서인도 간 노예무역의 권리를 행사하여 수익을 창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무역은 예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추가 시도한 복권 채권 도입에서 성공을 거두자 남해 회사는 금융 회사의 성격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노예무역이 실패한 이유는 스페인이 인정한 무역량이 영국의 요구량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1718년 스페인과 전쟁이 발생하여 무역이 중단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3. 남해회사 버블
남해회사는 1718년 발행한 복권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금융 기관으로 변신하기 위해, 은행과의 입찰 경쟁에서 액면가에 해당하는 주식 발행 권한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상납금 부담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해회사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주식과 국채를 시가로 교환합니다. 그리고, 주식 발행 허용 수량은 교환 금액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렇게 하면 발행 가능한 주식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행한 주식을 매각하면 매출은 남해회사의 이익으로 남게 됩니다. 이익이 올라가면 주가가 상승하고, 이를 반복하면 주가는 무한히 상승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남해회사는 이익을 올리고, 주주들은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3.1 주식 버블 형성
18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중산층들이 투자할만한 곳을 찾고 있었고, 이에 따라 주식 시장에서는 자금이 출렁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남해 회사의 주가는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고, 부채 인수 회사로 성장하여 주가는 10배나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편승하여 무허가로 만들어진 암거래 회사의 주가도 급등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투기에 빠져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귀족부터 서민 계층까지 너나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투기 열풍에 휩쓸려 전무후무한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러한 투자모금을 이용하여 사업을 발전시키기보다는 빠른 이익을 얻기 위해 주식 시장에서 장기간 보유하지 않고 매도하는 등의 투기를 펼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부도 이를 규제하기 위해 허가 없이 주식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무허가로 설립된 회사들이 많아지면서 정부는 규제에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주가가 폭락하는 위기로 빠지게 됩니다.
3.2 주식 버블 붕괴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남해회사 버블 사건으로 불과 몇 개월 만에 주가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많은 사람이 파산으로 자살을 하게 됩니다.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남해 회사 주식으로 7,000 파운드를 벌었지만, 이후의 폭락으로 20,000 파운드의 보게 됩니다.
투자자들의 분노는 남해 주식회사의 이사와 남해 주식회사의 주식을 뇌물로 받았던 정치가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증거 자료인 ‘녹색 장부’와 중요한 증인인 남해 회사 회계 과장 로버트 나이트가 잠적하였으며, 분노한 영국 의회는 로버트의 수색에 나서게 됩니다.
남해회사 버블에 연루된 정치인과 왕실 인사가 벨기에에서 채포된 나이트의 송환을 막았다는 소문과 결국 책임 추궁을 당해야 했을 왕실과 정치인에게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고 마무리 됩니다.
남해회사 버블은 네덜란드 튤립 버블 및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과 함께 근대 유럽 3대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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