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튤립 버블
‘튤립 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과열 투기 현상입니다. 자본주의 역사 중 최초로 발생한 버블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7세기 당시 네덜란드는 금융과 무역이 발달한 황금기였습니다. 튤립 파동(Tulip mania)으로 알려진 이 버블은 튤립 구근의 가격이 폭등 후 폭락하면서 버블이 꺼진 사건입니다.
1. 튤립 버블의 배경 및 역사
튤립의 원산지는 중앙 아시아의 톈산 산맥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지속적인 확장 중에 튤립을 발견했습니다.몇 종의 튤립을 재배하여 품종이 개량되면서 옷의 문양이나 그림에 넣었습니다. 이후 16세기 중반인 1554년 오스만 제국(튀르키예)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대사인 ‘오지에 드 부스베크’가 비엔나로 최초의 튤립 구근과 씨앗을 가지고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기는 감자, 고추, 토마토 등의 채소가 유럽으로 들어온 시기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공화국에서 튤립 농사는 플랑드르의 식물학자인 샤를 드 레클루제(Charles de l’Écluse)가 레이던 대학교에 소포로 튤립을 보낸 뒤 1593년 무렵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샤를은 튤립 구근을 심은 후 튤립이 저지대 국가의 가혹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600년경부터 1720년경까지 세계에서 1인 당 소득이 가장 높았습니다. 당시 암스테르담의 상인들은 한번의 항해로 400%의 이익을 내는 동인도 무역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무역으로 부흥기를 맞이한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더 할 나위 없는 부의 상징이 되어 갔습니다.
1.1 튤립과 다른 꽃들의 차이
이제까지 유럽에 알려졌던 꽃들과 달리 튤립은 강렬한 꽃잎 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유층 사이에서 튤립은 빠르게 탐나는 사치품이 되었고 다양한 품종이 뒤따랐습니다.
이국적으로 보이는 튤립은 그룹으로 분류되어 빨간색, 노란색 또는 흰색의 단색 튤립은 Couleren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색은 Rosen (빨간색 또는 분홍색 배경에 흰색 줄무늬), Violetten (보라색 또는 라일락 배경에 흰색 줄무늬), 가장 희귀한 것은 Bizarden or Bizarres (빨간색, 갈색 또는 보라색 배경에 노란색 또는 흰색 줄무늬)입니다. 꽃잎의 복잡한 선과 불꽃 같은 줄무늬의 다색 효과는 생생하고 장관을 이뤘습니다.
구근에서 자라는 튤립은 꽃으로 자라면 원래 구근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여러 개의 새싹처럼 복제 구근이 형성됩니다. 현대 금융 시스템의 많은 부분을 개발한 네덜란드인들은 튤립 구근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2. 튤립 버블의 시작과 붕괴
튤립 거래는 증권 거래소가 아닌 술집에서 열렸습니다. 거래에서 현물 및 현금은 필요 없었으며, 내년 4월에 지불할 때 구근을 배달하는 것으로 계약이 성사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물 거래 시스템‘은 자본금이 없는 사람도 거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버블은 1634년에 시작되어 1637년 2월에 붕괴를 맞이합니다.
1637년 2월 3일 튤립의 거래 가격이 갑자기 폭락합니다. 구매자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수요와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 ‘투기 거품’이 터졌습니다. 당황한 튤립 투기꾼들은 네덜란드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고, 네덜란드 정부는 향후 구근 구매 계약을 체결한 사람은 누구나 10%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지불을 할 수 없는 채무를 가진 투기꾼들은 3,000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말다툼과 채권자가 채무자가 되는 상황, 법정 다툼, 그 어떤 것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붕괴는 네덜란드 전역의 경기 침체를 만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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