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 대지진(관동 대지진)
간토 대지진(Great Kanto Earthquake)은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발생한 지진입니다. 지진은 11시 58분에 시작되어 최대 10분 동안 계속되었으며, 규모는 7.9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진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 뿐만 아니라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대학살 등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1703년에 발생한 간토 지진과 거의 비슷한 구조로 일어났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 지진을 다이쇼 간토 지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두 지진은 사가미 해곡의 판 경계를 따라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두 지진을 한데 묶어 사가미 해곡 거대지진으로 부르기도 하며, 간단하게 간토지진으로 묶어 부르기도 합니다.
간토 대지진(관동 대지진) 개요
한국에서는 관동 대지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1971년 10월 28일에 발생한 간토 대지진은 일본의 미우라반도 연장선 방향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필리핀해판과 북아메리카판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진 매커니즘에 따르면, 지진은 우향 낮은 섭입 각도의 역단층으로 일어났습니다.
1996년 다케무라 마사유키는 P파의 초동분포를 통해 진원 매커니즘을 분석하여 북동동 방향으로 34도 경사진 경사면이 단층면으로 추정되며, 옆으로 어긋난 성분이 많다고 추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확실한 것은 아니며, 일본 지진조사위원회에서는 필리핀해판이 침강하는 판 경계간 지역에서 북아메리카판이 끌려 내려가다 반대로 튕겨 올라가면서 일어난 지진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각변동을 통한 추정으로는 진원단층이 쇼난 지역 내륙 안쪽까지 있다고 추정되며, 지진의 진동은 오다와라 지역이 가장 심했습니다. 도쿄도에서는 진도 6의 강도를 관측했으며, 이 간토 대지진을 마지막으로 2000년 미야케섬 화산 분화로 인한 지진을 제외하고는 도쿄도에서 진도 6 이상의 강도를 지닌 지진을 관측한 적이 없습니다.
예측
1905년에 일어난 일로, 도쿄 제국 대학에서 교수인 오모리 후사키치와 이마무라 아키쓰네 사이에 지진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마무라 교수는 사가미만에서 50년 안에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도쿄 전역에서 대지진과 그로 인한 화재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마무라의 예측은 근거가 없었고, 다른 학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반면 오모리 교수는 소규모의 지진 발생은 지진응력을 해소하여 대지진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는 가설을 내세웠고, 도쿄에서 1921년, 1922년, 1923년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이 가설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1923년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오모리 교수의 가설은 틀렸음이 밝혀졌습니다.
간토 대지진 규모와 진도
토 대지진은 1951년에 발생한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지진 중 하나입니다. 이 지진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추정이 이루어졌습니다. 1951년에는 가와즈미 히로시가 M7.9로 추정했고, 1964년에는 쓰보이도가 대략 M7.9로 추정했습니다. 1999-2000년에는 다케무라 마사유키 등이 아키타, 센다이, 나가사키 등 7개 지역의 이마무라식 강진지진계 기록 데이터를 바탕으로 규모를 Mj8.1±0.2로 추정했습니다. 1977년에는 가나모리 히로가 모멘트 규모를 Mw7.9로, 2011년에는 나메가야가 Mw8.0으로 추정했습니다.
일본 중앙기상대의 관측 기록에서는 최대 진도가 도쿄부에서 진도6이었으나, 당시에는 진도7이라는 계급이 없었기 때문에 최고 등급인 진도6으로 측정한 것입니다. 간토 대지진 당시 일본 각지에서 진도를 느낀 지역에는 오다와라 등 사가미만 연안과 보소반도 남부, 도쿄만 연안 지역 등이 포함됩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진이 발생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경제 침체가 일어난데, 이는 동일본 대지진(2011년)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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