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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버블(1720년)

근대 유럽의 3대 버블은 영국의 남해회사 버블, 네덜란드 튤립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이 있습니다. 버블이란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페이지에서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Mississippi Bubble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미시시피 회사에 대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1. 미시시피 회사

미시시피 회사Mississippi Company는 1684년 설립 후 1717년부터 서부 회사, 1719년부터 인도 회사로 명칭이 변경 되었습니다. 북미와 서부의 프랑스 식민지의 사업 독점권을 가진 기업이었습니다. 1717년 미시시피 화사는 25년 동안 독점 거래권을 가진 프랑스 왕실의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미시시피 계획Compagnie du Mississippi이라고도 불립니다.

2. 미시시피 버블 이전의 프랑스

태양왕으로 알려진 ‘루이 14세(1638년 9월 5일 ~ 1715년 9월 1일)’의 오랜 통치는 프랑스 경제에 안 좋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루이 14세 치세 기간 지속적인 전쟁으로 프랑스는 큰 부채를 떠 앉고 있었으며, 위그노Huguenot를 탄압하여 프랑스를 떠나게 한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으로 수 많은 위그노가 프랑스를 떠나게 되면서 프랑스 경제는 쇠퇴기를 맞이합니다.

3. Mississippi Bubble 배경과 존 로John Law

3.1 Banque Royale

루이 15세 시기 영국 ‘영란 은행’처럼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중앙은행 설립 및 종이 화폐 발행으로 경제를 활성화 하는 방안을 강구합니다. 루이 15세의 섭정인 오를레앙 공작 아래에서 프랑스 재무 장관으로 임명된 스코틀랜드 출신의 금 세공업자 존 로John Law1716년 <뱅크 제너럴Banque General>을 설립하게 됩니다.

미시시피 버블의 당사자 존 로(John Law)

모든 세금을 <Banque General>이 발행하는 은행권으로 납부할 것과 세금으로 조달한 자금을 프랑스 왕실에 저금리로 대출 해 주는 방안은 프랑스 왕실의 고질적인 재정난을 해결할 방안이었습니다. <Banque General>의 자본금 600만 리브르는 존 로 본인과 왕실에서 ¼씩 납부하고 나머지는 공개 모집을 통한 일반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당시 발행한 주식의 약속된 배당금은 7.5% 였습니다. 법정화폐나 다름 없는 <Banque General>의 화폐는 어음할인, 환전 등을 통한 이익과 시뇨리지 효과를 얻게 됩니다. 당시 <Banque General>의 유일한 약점은 뱅크런 이었지만 뱅크런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없었습니다.

 시뇨리지: 화폐를 발행하는데 있어 주조 비용만 들어갈 뿐 발행해서 얻는 차익은 정부의 수익입니다.

3.2 미시시피 회사

<Banque General>로 끝났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1717년 존 로John Law는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던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뱅크 제너럴Banque General>과 같은 방법으로 자본금을 모아 경영권을 획득하고 서인도회사West India Company로 이름을 변경합니다. 프랑스 왕실은미시시피 회사가 정부의 부채를 부담하는 조건 하에 25년 간의 개발 독점권 및 북미의 담배, 프랑스의 모든 북미 식민지를 개발할 수 있는 독점권을 양도합니다.

4. Banque Royale과 미시시피 회사의 합병 및 확장

욕심이 생긴 프랑스 왕실은 1718년 <Banque General> 일반 주주들의 주식을 액면가로 매수 해 <왕립 은행Banque Royale>변경합니다. 프랑스 왕실은 조폐권을 가지게 되면서 더욱 막강해집니다.

이후 1719년 미시시피회사와 <왕립 은행Banque Royale>이 합병됩니다. 당시로 보자면 영국의 영란은행과 동인도회사의 합병이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은행과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합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융회사무역회사의 결합이었습니다. 프랑스 방식의 절대 왕정이 더욱 강력해 지는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후 사업은 미시시피 유역을 포함한 북미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718년 액면가 300리브르로 시작한 미미시피 회사의 주가는 1719년 여름 3,000 리브르로 10배 급등했습니다.

5. 버블 붕괴

1720년 1월에는 주가가 1만 리브르까지 급등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북미 식민지를 다녀온 사람들이 북미의 말라리아, 호전적인 원주민, 뜨거운 태양 등 부정적인 이야기가 퍼진 것과 함께 프랑스 정부가 1719년부터 재정 적자의 해결을 위해 화폐 발행량을 늘린 것이 문제가 발생합니다. <왕립 은행Banque Royale>에서 발행한 화폐로 주식을 더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은 1720년 말 파리의 물가를 2년 전 대비 2배 이상 끌어올린 상태였습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함께 사람들은 주식 매도를 했고 1720년 말에 거품이 터졌습니다. 1720년 9월 회사의 주식 가격은 2,000리브르로 떨어졌고 12월에는 1,000리브르로 떨어졌습니다. 1721년년 9월까지 주가는 500리브르까지 떨어졌습니다.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 하락 당시 프랑스 정부는 하한가 제한이라는 개념 도입 및 주가 하락을 매수하는 부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현금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방어로 화폐 발행을 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이 가속화 되었습니다. 
미시시피 버블(Mississippi Bubble)

미시시피회사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고 <미시시피회사>와 <왕립 은행Banque Royale>은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루이 16세 시절에 재정 악화를 벗어나기 위한 지폐 발행을 추진했지만 미시시피 버블의 불신으로 시민들은 화폐를 거부하게 되었으며, 화폐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재정 악화를 벗어나지 못해 결국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남해버블과 같은 시기에 일어난 미시시피 버블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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